인간과 종교

Written in

by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1949- )은 자신이 쓴 책 『분명 여기에 뼈 하나가 있다-변증법적 유물론의 새로운 토대를 향하여 Absolute Recoil』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 지식은 믿음에 의해서 보충되어야 하는가? 믿음은 지식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서 나타난다는 것인가? 우리는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신을 믿는다. 해답은 “내가 비록 그것을 알고 있을지라도, 정말로 아는 것은 아니다”이다. 우리는 지식을 주체적으로 취하지 않았다. 혹은, 취할 수 없었다. 지식은 진리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다. 따라서 믿음이 지식 그 자체 안에 있는 그 간극을, 내재적인 균열을 보충한다.

지젝이 지적한 대로 신을 향한 믿음이 신에 관한 지식 속에 도사린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면, 인류가 축적한 지식에 내재된 가장 큰 균열은 인간 의식이고 그 보충제는 종교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부터 근대 현상학자를 거쳐 현재 뇌과학자에 이르기까지 의식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끊임없는 분석이 있어야 할 자리에 우연과 전지전능한 신을 도입하며, 결국은 창발(創發, emergence)이나 부수현상 혹은 근본요소(根本要素, fundamental element)로 규정 지을 방법밖에 없는 바로 그 의식 말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파악하기 어려운 의식 문제를 낱낱이 해체해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일이 가능해진다면 신이 우리 영혼 혹은 의식을 창조하고 관리한다는 믿음이 사라질까? 그동안 진리로서 행세하지 못한 부족한 의식에 관한 지식을 보충하는 수고를 담당했던 신이 할 일을 잃고, 인간 의식이 지닌 놀라운 비밀이 물리계 요소로 밝혀진 세상은 인간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영국인 생물학자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이 1859년에 발표한 진화생물학 이론서 On the Origin of Species,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종족 기원, 자연 선택에 의한 종족 기원,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종족 보존)에서 주장된 자연선택설(自然選擇說, natural selection)이 인정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구조에서 아직까지도 종교와 형이상학이 차지한 비중을 본다면, 어려운 인간 의식문제가 물리법칙으로 설명되고, 완벽한 환원물리주의가 대두된다고 한들 사실상 크게 달라질 것도 없으리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의식 이외에도 수많은 균열들이 인간이 가는 길 골목골목에 함정처럼 도사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