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계절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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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이 붉은 단풍으로 물드는 계절, 가을이 시작되었다. 독일 사회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에바 헬러 Eva Heller가 저술한 ‘색채 이미지 연상 연구’에 따르면, 가을 단풍에서 볼 수 있는 빨강이나 주황색은 ‘열정, 사랑, 즐거움, 자유분방함’ 등을 우리에게 연상시킨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붉은색 연상 내용들은 겨울로 접어들며 기온이 뚝 떨어지는 가을보다는 차라리 지나간 뜨거웠던 여름에 오히려 더 잘 어울린다 생각된다. 사실 가을은 어찌 보면 그동안 태양에 의해 뜨겁게 달궈졌던 대지가 서서히 식어가며 추운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이기에 붉은 기운 색보다는 차가운 계열 색상이 더 어울릴 법한데, 그 시점에서 울긋불긋한 단풍 색은 어째 좀 맞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신록이 우거진 푸르른 여름 색 또한 어차피 색채 연상으로 따지면, 가을과 마찬가지로 잘 들어맞지 않는다. 콘크리트조차 녹여버릴 듯한 강한 열기로 가득한 여름을 대표하는 색이 뜨겁기는커녕 미지근함도 생각하기 힘든, 온갖 식물들이 만들어 낸 차디찬 녹색이라니 말이다. 어쨌든 이런 규칙대로라면, 신기하게도 현재 계절이 드러내는 색은 바로 이전 계절이 지닌 특성을 의미한다고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여름 녹색은 봄을, 가을 빨강은 여름을 의미한다는 뜻이겠다. 그렇다면 짧은 가을이 지나고 곧 다가올 겨울은 분명 하얀색 눈으로 세상이 온통 뒤덮일 텐데, 현재 가을을 대표하는 진짜 가을 특징은 붉은색이 아니라 흰색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에바 헬러 ‘색채 이미지 연상’에 따르면 흰색은 ‘지혜, 진실, 텅 빈, 슬픔’ 등을 연상하게 된다고 한다. 정말 신기하게도 가을 느낌으로 생각해 보면 제법 그럴듯하지 않은가? 가을에 무척 어울리는 단어들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왕 이렇게 계절 색이 지닌 깊고 흥미로운 비밀을 알게 됐으니 우리는 이 스쳐 지나가는 가을을 그냥 무의미하게 보내지 말고 하얀색 의미로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책을 읽어 지혜를 추구하고, 낙엽수 落葉樹가 잎을 떨구며 자신을 비워내 듯, 끈적이는 여름 찌꺼기를 정리하며 마음을 정화하는 계절로 말이다. 곧 다가올 하얀 겨울 색을 통해, 오색단풍 뒤에 숨겨진 진정한 가을 의미를 엿볼 수 있는 ‘계절 색’이 신기하기도 하고 참 재미있다.
🙂